인문학/책

<과학과 신학의 대화 Q&A>

Retyper 2023. 5. 6. 22:26

 

 

과학과 신학의 대화 Q&A | 바이오로고스 | IVP- 교보ebook

과학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더 깊이 배우는 동시에 신학적으로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까? 38개의 질문을 던지며 답을 찾아간다! 과학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의 고민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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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존야를 쓰신 예수님. 딜이 들어가지 않는다.

 

 

이 책이 주요한 target으로 하는 독자 : 현대과학이 밝혀낸 사실들과 기독교에서 배운 교리가 충돌하여 갈등을 겪고 있는 기독교 신자

 

 

2줄요약 : 

성경의 내용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설명한 사실이 아닌 작성 당시의 시대적 지식을 고려하여 의미를 파악하는 형식으로 이해해야한다.

올바른 기독교인의 자세는 현대 과학을 성경을 공격하는 침략자가 아니라 신앙인으로써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방법을 이해하는 도구로 받아들여야 한다.

 

기독교인이자 물리천문학부 교수가 받아들인 세상

내용을 읽어보면 알 수 있지만, 작가는 독실한 신앙인이면서도 저명한 과학자로서 조화롭게 과학과 신학을 동시에 이해하고 있는것으로 보인다. 긍정적인것은 이 책을 접한 기독교인들에게 현대과학으로 증명한 세계의 모습을 경외심과 함께 받아들이는 것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가 아닌 문학적으로 이해해야함을 주장하고 있고 그것을 이해한 내용에 있어 과학이 지금까지 밝혀낸 세상의 원리와 전혀 충돌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비 종교인인 나도 그러한 내용을 납득하는데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렇게까지 해서 굳이굳이 성경이 틀리지는 않았음에 위안을 삼는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쨌든 성경은 옳다? 숟가락 얹기식 세계관

성경은 일단 완전하다는 가정을 이미 해두고 과학이 무언가를 밝혀내고 증명해내건 결과론적으로 그게 바로 원래 성경이 의미하던 바였다라고 사후편향적으로 해석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지 않고 그 의미를 탐독하면 과학적으로 밝혀진 사실이 무엇이건 성경은 옳다는 말은... 나는 이렇게 받아들여진다.

만약 성경 말씀에 "지금 네 눈앞에 있는 검은 상자안에는 사과가 들어있다" 라고 쓰여있다고 해보자. 이 검은 상자의 자물쇠는 많은 사람들이 열려고 시도 했지만 열 수 없었고, 성경의 있는 말을 증명할수 없고 증명할 필요도 없이 그냥 그 상자안에는 사과가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어느날 그 자물쇠를 풀어헤치고 상자를 활짝 열어 젖힌 사람이 등장 했다. 그는 상자를 열어 그 안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다는 것을 모두에게 보여 확인시켰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말씀이 거짓이었다는것을 이해하였지만 독실한 어떤 신자들은 성경에 공격을 가한 그 사람을 혐오했고, 어떻게든 성경이 틀리지 않았음을 이해하려고 했다. 그 결과 그들은 "사실 그 성경 말씀은 언제나 실수할 수 있는 불완전한 사람이 쓴 글이고 거기서 말한 사과의 뜻은 우리가 알고있는 사과가 아니다. 또는 그 검은상자조차 하느님이 작성자에게 감동을 주신 대상이 아니고 '문학적'으로 해석해볼 필요가 있다." 라고 하며 구차하게 변명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렇게 까지해서 성경의 정당성을 지키려고 하는 이유는 그들의 믿음이 성경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그 안에있는 가치는 살아있고 그것을 져버리는 것은 믿음을 배반하는 행위이다. 나는 그러한 행동이 진정으로 하느님이 만드신 세상과 그 뜻을 이해하는 자식된 도리로서 아주 정반대의 방향으로 간다고 생각한다. 적극적으로 세상의 진짜 모습을 이해하고 또 직접 밝히지는 못할망정 방관하고, 스스로 눈을 가리고, 우물안으로 직접 들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이 책의 작가도 무척 안타까워하고 있는 부분이지만 그는 실천하고 있다는 점이 다른것 같다.

 

 

현대과학이 수립한 세계관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

현대 과학으로 밝혀진 물질관과 진화생물학에 대해 밀도 있으면서도 자세히 설명이 되어있다. 처음 듣는 내용이더라도 조금의 상식만 가지고 있다면 내용을 이해하는데 전혀 문제 없이 쉽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렇게 설명 하더라도, 어쨌든 인류가 진화해오고 존재해온 사실엔 변함이 없으니 그걸 이룬게 결과론적으로 하느님이다 라고 마무리 되고 있다. 성경에 쓰인 그대로의 방식이 아니라 how는 과학에게 맡기면서 영원히 알수없은 why 만 신의 뜻으로 덮어씌운다. 과학의 눈에서는 미지의 영역을 섣불리 정의 해선 안 된다. 근거없는 주장을 사실로 여기고 그 다음 영역을 밝히려고 하면 그뒤로 밝혀진 모든 것들이 구름위의 성 처럼 사라져 버린다. 결국 미지의 영역에 도전하고 증명하여 진실을 직접 확인하는 과학자들만이 유신론자와 무신론자 공통으로 가진 질문, 하지만 유신론자들은 막연히 믿기만 하고 덮어두던 부분,들을 해결한다. 

 

 

"하나님 창조 세계 안에서의 발견이 하나님 말씀의 해석과 충돌을 일으킬 때, ..."

작가는 "우리의 성경 해석을 하나님의 창조 증거의 빛 아래서 재고해 본다" 를 선택하는게 타당하다고 했다. 창조 증거라... 밝혀낸 세계의 진실이 왜 창조를 뒷받침하는거지... 그럴싸한 단어만 이어 붙이면 마치 전혀 관련없는 것이 무언가의 증거가 된다는 착각이 생기는것 같다. 나는 이 말이 이렇게 들린다. "근거가 있는 과학적 견해와 근거없는 창조론 관점이 부딪혔을때 처참히 부서진 창조론 관점의 파편들을 과학적 증거위에 어떻게든 붙여서 이제 입맛대로의 해석을 가진 과학적 견해를 창조론이라고 새롭게 믿은뒤 우리 주장은 죽지 않았고 앞으로도 영원히 이 방법으로 살아남을 것이라는 것에 위안을 얻자."

 

 

유신 진화와 진화적 창조

신은 존재하고 세상과 자연법칙을 만든 '시계공', '수학자' 같은 존재 이지만 적극적으로 우주를 지배하거나 관여하지 않는다는 이신론적 관념이 있다. 그 안에서 생명의 진화 또한 의도한 창조가 아니라는 것이 유신 진화라고 한다. 나는 신 존재를 인정한다면 여기까지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작가가 주장하는 진화적 창조의 관점이란 예수의 부활과 같은 성경적 기적을 인정하고 신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모든 자연적인 과정을 이용하고 있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현대 과학안에서 부활은 아직까지 사실일 수 없는데도 과학과 신학을 충돌없이 이해하고 있다는게 물어보고싶은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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