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책

<도덕의 계보>

Retyper 2022. 7. 6. 23:43
(누군가가 너의) 한쪽 뺨을 때리거든 다른 뺨도 돌려 대고 네 겉옷을 빼앗는 사람에게 속옷까지 주어라. - 누가복음 6:29 -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었던 니체가 나중에 커서 이 문구를 보았을 때 격노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사진1. 거인巨人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망치의 철학자

'신은 죽었다'라는 선언으로 유명한 니체는 1844년 독일의 시골에서 태어나 기존 인류의 도덕과 철학에 거대한 폭격을 수차례 남기고 말년에 정신병에 걸려 1900년에 사망하였다. 당시 서양인의 근본 가치를 뒤흔들어놓았던 니체의 저서 중 [도덕의 계보]는 1887년에 발행된 말년 작품이다. 

 

[도덕의 계보] - 몇 번이고 읽게 만드는 도발적이면서도 신선한 관점

위키백과에 작성된 책에서는 도덕의 계보를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이 책에서 니체는 기독교도덕을 비판한다. 기독교는 증오심에서 발원한 위선 도덕(僞善道德)이며, 강자를 약자에게 종속시키려는 도덕, ‘노예 도덕'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본래의 고귀한 도덕은 자연스러운 ‘지주 도덕(Junker Philosophie)’의 입장에서 구해야 한다고 보았다. 평등 이념에 의해 가치의 위계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인간을 평균화시키는 ‘이웃사랑’의 도덕에 대해서, 강자의 전형인 ‘초인’의 육성을 목표로 노력하는 ‘원인애(遠人愛)’의 도덕이야말로 참된 인도성(人道性)을 관철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 강영계 역, 도덕의 계보학: 하나의 논박서, 지만지 2013년 -

 

도덕의 계보는 서론을 제외한 총 3가지 논문으로 나뉘어 있다. 나는 니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이렇게 나누었다.

 

  1. 초기가치관 탄생
  2. 초기 도덕의 발생
  3. 기독교 도덕의 발전
  4. 노예 도덕의 병폐
    4.1 성직자의 착취 수단
    4.2 화폐 위조 정신승리
  5. 결론. 패배자의 정신승리에서 벗어나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되는 진정한 가치에 귀 기울여라

메타컨셉

내가 본 도덕의 계보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1줄
빚을 갚는 것이 인간이 만든 정의, 도덕의 근원이다.

3줄
선과 악은 인간보다 먼저 정의되지 않았다.
따라서 선악 관념은 만들어진 것이다.
인류가 만들어온 선은 채무를 이행하는 것이다.

5줄
본질보다 존재가 선행한다.
선악의 본질은 인간이 존재한 이후 생겨났다.
집단적 관계를 맺고 사는 인간사에서 선악보다 먼저 좋고 나쁨의 개념이 있었다.
좋고 나쁨이 만든 형이상학적, 형이하학적 우월함과 열등함이 우월함의 찬양과 열등함의 증오를 만들어냈다.
채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초기선을 토대로 지금의 기성 선악관이 탄생했다.

노예들이여, 주인이 되어라
실존주의가 왜 실존주의인지 니체의 책을 읽으면 확실히 알게 된다. 실존주의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존재는 본질에 선행한다'는 것이다. 알베르 까뮈의 말처럼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삶으로 내던져졌다. 세상을 만들어낸 누군가가 있다면 어느 것도 미리 정해 놓지 않았고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던 아무런 관심이 없다. 왜냐면 누군가 의도해서 인간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조차 생물학적인 존재가 있기 전에는 본질적으로 스스로를 규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존재가 본질에 선행한다'는 사실에서 '(사람이 태어난 뒤에 만들어진) 신은 죽었다, 따라서(존재 없이 본질을 논할 수 없으므로) 모든 것은 가능하다'는 생각이  파생되었고 니체는 이 크고 아름다운 해머 같은 정리를 가지고 기존에 만들어진 수많은 사상과 관념들을 무차별적으로 두들겨 팼다. 그중 이 책에서 집중적으로 공략한 것은 바로 기독교에서 출발한 이른바 '노예 도덕'이다.


인간에게는 정립된 공공의 질서가 아무것도 없는 야생과 같은 시절이 있었다. 그 속에서 생명체인 인간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본능은 자극과 반응이었고 이에 따라 개체가 느끼는 좋음과 나쁨이 있었다. 달면 삼켰고 쓰면 뱉었으며 약하면 당했고 강하면 빼앗았다. 이어서 생존과 번식의 법칙에 따라 좋은 것은 추구되고 나쁜 것은 배척되었다. 이것이 반복되며 초기의 가치관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자연스럽게 가치의 우위가 생기면서 더 가진 자와 덜 가진 자가 생겼다. 그리고 각자 가진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생존을 위한 필요한 가치들은 교환되었다. 발달된 의사소통 덕분에 단순교환이 아닌 외상과 선물도 발생하였고 이 채무를 약속대로 이행하는 것에서 초기의 도덕이 발생하였다. 즉, 약속을 지키는 것이 바른 행동이었고 이를 어겼을 때 채권자가 채무자 권리의 일부를 빼앗았다. 다른 가치를 빼앗거나 노예로 만든다거나 신체적 상해를 입히거나 하는 등 일반적인 교환이 아닌 탈취가 행해졌고 아무도 그를 보호하지 않았으며 당연하게 여겨졌다. 왜냐하면 채무자가 약속의 덕을 어겼기 때문이다. 이게 우리가 지금까지 믿어왔던 선의 근원이며 본질이다.

기독교는 이 채무관계를 영원 속에 가두어 버린다. 인류는 씻을 수 없는 '원죄原罪'가 있는데 그것은 인간 스스로 갚을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며 선지자나 신 만이 그 빚을 갚아주는 방법밖에 없다. 영혼을 저당 잡힌 인간은 죽을 때까지 신의 노예로서 살아가는 게 정의가 되어버리며 이를 거역하면 채무를 불이행하는 신용불량자로 버림받게 만든다. 재밌는 것은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보다 신에 가깝다고 공언하고 있는 똑같은 채무 불이행자 인간들 뿐이다. "한쪽 뺨을 맞는다면 가만히 다른 쪽 뺨도 내밀어라"라고 온순한 양으로 만들어 데들지 않는 노예로 만들고 편안하게 그들의 모든 것을 착취한다. 니체는 이런 기독교의 착취적 신앙을 보고 빌려주지도 않은 돈을 뜯어내는 '화폐 위조'라고 까지 하며 격렬하게 비난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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